아이들이 용감하고 평화롭게 자라도록 돕는 교육 - 2024년 독일 발도르프교육 연수 후기 -
경주에 살면서 서울 연수에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몇 년 동안 꾸준히 참여한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마 큰 딸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시작을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2016년 여름 이후 서울에서 총 다섯 번의 여름, 겨울 집중 연수에 참여하고 2020년부터는 경주 아이꿈터 어린이집 교사들과 함께 경북에서 이루어지는 발도르프교육 유아교사 양성과정 연수를 통해 여름, 겨울 집중 연수와 상·하반기 월례 연수를 약 3년간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독일 현지 연수와 마지막 논문 준비를 앞두게 되었다.
총 4회 이상 집중 연수와 4회 이상 상·하반기 월례 연수 참여 요건을 충족한 사람들 중심으로 6명, 그리고 같은 기간 미술 치유 전문가 과정에 4주간 동안 참여하시는 중등 미술교사 한 분 총 7명이 17일간의 긴 여정에 함께하게 되었다.
연수는 한국발도르프교육협회(회장 허영록)에서 주관하여 2024년 1월 27일 한국에서 출발해서 2월 12일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1월 29일부터 2월 2일까지 5일간 위버링엔 캠프힐 공동체(Camphill Schulgemeinschaften)의 푀렌빌(foehrenbuehl) 통합 발도르프 유치원에서 연수를 하고, 2월 5일부터 9일까지 5일간 위버링엔 발도르프유치원(Ueberlingen Waldorfkindergarten)에서 연수를 실시했다.
두 기관 모두 매우 규모가 커서 놀라고(산과 마을 하나가 포함된 캠프힐! 커다란 농장과 큰 유아 – 초등 - 중등학교, 큰 식당과 복합 매장, 전국 규모 유통시설이 있는 발도르프교육 시설!) 시설이 매우 안전하고 쾌적할 뿐만 아니라 너무나 아름다운 건물과 풍경에 감탄했다.
아이들은 숲에 가서 놀이를 하기 전 복장(장갑, 모자, 방한 놀이 수트, 등산화 같은 부츠)을 세밀하게 갖추는데 긴 시간을 보내며 숲에서 하는 놀이 시간은 잘 갖추어진 복장 덕분에 비가와도, 제법 매서운 추위에도, 거친 산길이나 흙더미, 개울을 만나도 아이들은 거침없이 탐색하며, 그야말로 씩씩하고 용감하게 맘껏 놀았다.
교사의 염려나 불안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이런 광경을 바라보며 아이들에게 생긴 작게 긁힌 자국에도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교사의 마음이 얼마나 아이들의 성장에 나쁜지 반성이 되었다.
지금 우리는 아이들을 친절하게 가두고 겁쟁이로 만들고 있구나! 그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친절한 보호에 의존한 채 강한 의지를 기르지도 못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제한된 상태를 자신의 의지로 넘어설 만큼 큰 마음을 갖지도 못하겠구나! 걱정이 밀려왔다.
놀이 속에서 아이들이 서로 간에 크고 작은 갈등들을 만들지만, 교사들은 적시에 적절한 중재를 통해 평온한 상태, 일과 속에서 해야 할 본래의 리듬으로 돌아오도록 잘 이끌어 나갔다. 매일 반복되는 평온함과 즐거운 분위기를 깨는 상황이 잠시 생기더라도 곧 다시 평화로운 분위기로 회복해 가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강하게 대비되게 느껴졌다.
교사와 아이들 모두 문제 상황과 갈등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리듬과 평화로움을 회복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잘못된 행동을 한 누군가를 호되게 야단치거나 벌주지 않아도 배려와 애정어린 관심, 적절한 도움과 보호 그리고 단호함만으로 서로가 지켜야 할 공동의 규칙을 내면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연령의 유아가 함께 생활하면서 아이들은 공동체(유치원, 교실) 속에서 더 성숙된 모범적 행동을 보고, 그것에 대한 자발적 모방을 통해 스스로 배우도록 격려되며,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사랑해 주는 서로의 관계가 성장하는 큰 힘이 되었다.
위버링엔 발도르프 유치원에서는 영아반 참관을 했는데 영아들이 잘 먹고, 마음껏 놀고, 잠자는 리듬 생활을 매우 소중하게 다루었다. 잠자는 시간은 아이의 영혼이 충분히 휴식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신비로운 시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외부인이 잠자는 시간에 침범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유아는 오전 일과를 마치고 귀가를 하거나, 유치원에 남는 아이들은 모두 오후 시간에 낮잠을 잘 수 있도록 방과 침대를 마련해주었다. 아이가 (바깥) 놀이하는 것에 충분한 시간을 쓰고 나니 아이들은 점심을 다 먹기도 전에 스스로 잠을 청하며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한국의 유아교육 현장과 학교 현장을 떠올리면서 배움과 성장이 일어나는 공동체 공간이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은 평화롭고 행복한가? 교육현장이 작은 사회로서 평화롭고 행복한 곳이 되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돕고 있는가? 우리는 현재를 바라보고 변화를 시작하고 실천할 용기가 있는가? 미래세대를 위해 교육을 꼭 바꾸어 내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있는가?
독일 발도르프교육 연수를 다녀와서 우리의 교육현장을 돌아보며 느낀 점은 무엇을 더 보태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없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 없어야 할 것은 일상적인 안전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다. 교사와 부모는 아이들이 불안과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고 평화롭고, 용감하게 놀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것인지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아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없어야 할 것은 너무 많은 교사(부모) 주도 과업들이다. 아이들은 이 세상에 각자 자신이 사는 목적을 가지고 온다고 한다. 자신의 능력을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스스로 꽃피워 낼 수 있도록 교사와 부모는 돕고 보호하는 존재일 뿐,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이 삶의 주인이자 고귀한 존재임을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 아이들이 용감하고 평화롭게 자라도록 돕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교사와 부모의 과업이다. 참 아름답고 행복한 교육이 있다면 인간은 더 고귀하고 성숙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신경진(참교육학부모회 부회장) <저작권자 ⓒ 참교육 학부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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