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여러 중·고등학교 학칙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징계 대상 항목에 심심찮게 보이는 문구다.
출석정지나 퇴학 등 최고 수위의 징계까지 가능케 해 놓은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런데 따져 보면 그 의미가 그리 명확하지는 않다. 불건전하다는 것은 어떤 경우를 가리키는 걸까? 성관계를 맺으면 불건전한 것일까, 키스부터 불건전한 것일까? ‘이성 교제’를 연애와 동의어로 쓰는 것은 이성 간의 성적이지 않은 교제는 없다는 뜻일까?
이런 의문을 명쾌하게 해결해 준 학교가 존재한다. 2000년대 후반, 학생인권 침해가 심각한 경기도 한 사립고가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고 7무”라며 ‘절도’, ‘폭력 행위’ 등과 나란히 ‘불건전한 이성교제’가 없어야 한다고 표방하는 학교였다.
그 무렵 입학식에서 학교생활을 안내하던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불건전하든 건전하든 이성교제는 안 된다.”
‘불건전한 이성교제 금지’ 학칙은 뭔가 비도덕적인 문제행동을 금하려는 것인 양 꾸미고 있지만, 사실 그 본질은 학생들의 연애 또는 성적 관계를 억압하려는 것일 뿐이다. 동성 간의 연애나 성적 행위는 애초에 비정상의 영역으로 간주하고 생각도 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어떤 연애가 허용되고 안 될지는 대체로 학교 측의 자의적 판단에 달려 있다. 심한 학교들은 손을 잡는 행동 등을 세세하게 금지하고 단속한다. 그보다 규제 정도가 덜한 다수의 학교들은 평소에는 저런 학칙을 잘 적용하지 않다가, 뭔가 주민·학부모들로부터 말이 나오거나 시끄러운 사건이 발생하면 이 조항을 꺼내들어 처벌의 근거로 삼곤 한다. ‘이성교제를 한다고 해서 처벌하진 않겠지만, 학생들 사이에 그걸로 소문이 돌거나 성적이 떨어졌다는 항의가 있으면 징계하겠다’라는 공지를 한 학교도 본 적이 있다.
만일 이것이 문화적 차이나 세대 간 차이의 문제라면,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 불편하지 않도록 상호 이해를 추구하고 대화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적절한 성적 행위를 가능케 하고 위험하거나 차별적인 관계를 방지하려는 교육적 차원의 일이라면, 성교육으로 바람직한 문화를 유도하고 상담 등으로 개별 학생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어야 마땅하다. 그럼으로써 학생들에게 관련된 역량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적’이다. 그것이 학교가 본래 해야 할 역할이기도 하다.
반면 학칙 중 징계 대상 항목에 연애를 명시해 놓고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성적 행동을 하는 사적인 경험과 관계의 문제를 처벌과 강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학생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통제 대상으로 바라보기에 가능한 것이다. 합리적·필수적 이유도 아닌 ‘학생답지 못해서’, ‘면학 분위기에 방해돼서’와 같은 자의적이고 모호한 이유를 들면서, 교사들의 주관적 ‘건전성’ 판단에 의해서 적용·집행되는 규칙이니 더더욱 그렇다.
학생인권 보장을 주장하는 일은 많은 경우 학교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폭력과 단속, 인권 침해를 하지 말고, 학생들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교육적 접근을 좀 해 달라.” 사실 단속과 처벌, 징계를 하지 않으면 교육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이들이야말로 학교와 교육이 무능하다고 믿고 있는 것 아닐까. 학교는 교육기관이기에 학생의 인권을 무시해도 되는 게 아니라, 반대로 학생을 존중하면서 교육적인 방법으로 교육 활동을 해야만 한다. 연애 처벌 학칙이 반인권적인 동시에 비교육적임을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깨닫기를 바란다. 공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저작권자 ⓒ 참교육 학부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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