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적 정의를 만나다

▲ 장윤영(거제지회)

영화 <밀양>에서 주인공은 아들을 죽인 가해자를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를 찾아간다. 하지만 가해자는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며 피해자의 용서를 무색하게 만든다. 주인공은 울분에 복받쳐 가슴을 부여잡고 울부짖는다. 피해자가 용서를 하지 않았는데 누가 용서를 한단 말인가?

거제지회장을 하면서 학폭 피해 학부모의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피해를 당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고통을 받고 있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본부 상담실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미 너무 지난 일이라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가해자는 자신이 받은 처벌과 피해자에게 행한 피해보상으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는 제대로 된 인정과 사과를 받지 못한 상태로 당시의 고통과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일은 다하지 못한 숙제처럼 오랫동안 내 마음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거제지회장을 마치고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했다. 2021년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할 무렵, 거제지회에서 거제행복지구 마을학교를 운영했다. 나는 마을 교사로 청소년 노동인권 강의를 했다. 이것을 계기로 거제행복지구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강의 프로그램을 제공 받을 수 있었고, 그곳에서 ‘회복적 정의’를 만났다.

아! 이것이다. 회복적 정의! 

회복적 정의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가 어떤 피해와 영향을 받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피해자와 공동체 역할을 강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피해를 최대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회복적 정의이다. 우리는 갈등이 생기면 가해자의 처벌에만 집중할 뿐,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는 관심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곧 피해 회복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복적 정의는 나에게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했다. 나는 거제교육지원청에서 진행하는 모든 회복적 정의에 관한 강의를 수강하고 더불어 자격증도 취득하게 되면서 활동 영역이 더욱 넓어져서 회복적 생활교육 마을강사, 거제교육지원청 관계 회복 지원단, 회복적 경찰 활동까지 하게 되었다. 

갈등이 생기면 당사자 모두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일로 본인과 다른 사람에게 어떤 피해와 영향을 주었는지? 재발 방지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주변에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앞으로 어떤 관계로 지내기를 원하는지? 이런 질문을 통해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돕는다. 나는 사건 당사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에 들어가면 서클로 수업을 진행한다. 둥글게 둘러앉아 각자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나머지는 공감하는 마음으로 경청한다. 토킹 피스를 통해 모두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들의 약속을 정해서 안전하게 자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만든다. 처음에는 낯선 수업 방식에 어색하고 쑥스러워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부끄럽게 꺼내어 놓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에게 충실하게 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서클을 통해 공감과 배려를 배웠어요’, ‘서클을 통해 친구와 더 가까워졌어요’ 소감 나누기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더없이 기쁘다. 

학교 폭력 사안이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갈등은 교실 안에 존재하고 이러한 문제를 지혜롭고 평화롭게 풀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회복적 생활교육 수업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공감과 책임을 바탕으로 피해를 복구하고, 지속적인 행동 변화로 이끌어 가는 교육을 하고 싶다. 

요즘 나는 상처받고 무력감에 지쳐있는 자신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또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는 회복적 정의 실천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