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 학부모신문

산수경석과 Another brick, 그리고 ‘선’을 넘는 ‘냄새’

- 영화 <기생충>을 보고

참교육 학부모신문 | 기사입력 2024/09/05 [04:13]

산수경석과 Another brick, 그리고 ‘선’을 넘는 ‘냄새’

- 영화 <기생충>을 보고
참교육 학부모신문 | 입력 : 2024/09/05 [04:13]

산수경석과 Another brick,

그리고 ‘선’을 넘는 ‘냄새’

- 영화 <기생충>을 보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계층 상승 욕망의 덧없음과 소비 자본주의의 끝을 파국으로 보여준다. 

 

영화에는 세 가족이 등장한다. 박 사장 가족과 기택네 가족, 그리고 근세네 가족이다. 박 사장은 자수성가한 큰 부자이고, 기택은 반지하에, 근세는 지하에 사는 하층민이다. 영화에서는 주요 등장인물 네 명이 죽지만, 특이하게도 악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우리처럼 적당히 이기적인 존재들일 뿐이다. 악당도 없고,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의 대립 구도 자체가 없는 영화 ‘기생충’의 파국적 결말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기우가 품고 다니는 ‘산수경석’은 재물운을 가져다 준다는 물건이다. 산수경석은 부(富)를 향한 우리들의 욕망을, 또 특별해지고 싶은 우리 자신을 상징한다. 자기계발서가 말하는 것처럼 계획을 세우고, 꿈을 꾸고, 습관을 바꾸고, 자신을 바꾸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계층 상승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산수경석을 가슴에 품고 다니던 기우는 결국 이 산수경석으로 머리를 맞아 크게 다칠 뿐이다. 우리는 자신이 ‘산수경석’과 같은 특별한 존재일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살지만, 영화 후반 시냇물 속으로 돌아간 산수경석은 주변의 다른 돌과 다름없는 평범한 돌일 뿐이었다. 

 

‘산수경석’의 반대편에 놓인 것이 ‘Another brick(또 다른 벽돌)’이다. ‘Another brick’은 박 사장 회사의 이름이다.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 ‘Another brick in the wall’에서 따온 것이다. 노래의 후렴은 ‘어차피 너는 벽의 또 다른 벽돌일 뿐’으로 하층민, 또는 직원들을 그저 쓰다 버릴 수 있는 부속품으로 여기고 있음을 나타낸다. 

 

실제 박 사장은 가정부 문광이 나가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뭐, 아줌마야 쌔고 쌨으니까, 다시 또 구하면 그만이긴 한데⋯⋯.” 그들에게 우리는 돈으로 쉽게 살 수 있으며, 어디에나 널려있다. 사용하고 나면 버리고, 또 다른 벽돌을 돈 주고 쓰면 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지만, 그들에게는 우리는 그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하나의 ‘Another brick’일 뿐이다. 

 

‘기생충’은 우리 사회가 넘어설 수 없는 계급으로 나뉘어 있음을 보여준다. 상류층은 하류층을 절대 이해할 수 없으며, 하류층은 결코 상류층으로 올라설 수 없다. 그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이고 극단에 이른 자본주의 사회다. 상류층과 하류층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박 사장은 이 선을 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 기택은 박 사장이 그어놓은 선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택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택의 냄새가 이 선을 넘는다. 

 


박사장 : 그런데 냄새가 선을 넘지, 냄새가. 차 뒤쪽으로 냄새가 존나게 넘어와 씨발.

연  교 : 무슨 냄새길래?

박사장 : 아무튼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고, 가끔 그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 있어. 그런 거야. 지하철 타는 분들 특이한 냄새가 있거든.


 

영화를 보던 우리는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라는 말에 움찔한다. 기택네 가족이 바로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박 사장이 이 말을 하는 순간 우리는 거실 탁자 밑에 바퀴벌레처럼 숨어 꼼짝 않고 있는 기택네 가족의 입장에 서게 된다. ‘냄새’는 영화 첫 장면부터 반지하에 걸려있는 양말을 통해 보여지기도 했다. 또한 영화에서 표현된 것처럼 지우려 해도 잘 지워지지 않는 것이 ‘냄새’다. 

 

영화에서 냄새는 그 사람의 본질에 가까운 것으로, 사람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박 사장에게 우리는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로 묶여 한 덩어리로 존재한다. 우리는 서로 자신이 조금 더 높다고 아등바등하며 살고 있지만, 박 사장의 코에는 다 똑같아 보일 뿐인 것이다.

 

 

영화는 지하에 살던 근세가 등장하면서 갑자기 코미디에서 스릴러로 바뀐다. ‘근세’라는 이름은 갑근세에서 따온 말로 그냥 봉급 생활자를 나타내기 위한 이름이다. 지금까지 같은 집에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던 근세는 실제로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비정규직을 상징한다. 근세는 ‘있지만 없는’ 사람이다. 기택마저도 근세와 자신은 다른 계층의 사람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기택이 박 사장의 가슴에 칼을 꽂는 순간 이 영화는 비로소 주제를 드러낸다. 기택은 도대체 왜 박 사장을 죽인 것일까? 박 사장은 죽을 잘못을 하지 않았다. 단지 자동차 키를 가지고 가려 하였을 뿐이다. 자동차 키는 근세 밑에 있었고, 근세의 몸을 들추던 박 사장은 참을 수 없는 냄새에 코를 움켜쥐고 인상을 썼다. 그 순간 기택의 눈빛이 바뀐다. 기택에겐 그 순간 자신이 바퀴벌레처럼 테이블 밑에 숨어서 들었던 ‘지하철 타는 사람들 냄새’ 이야기로 느꼈던 모멸감이 되살아났을 것이다. 자동차 뒷좌석에서 코를 움켜쥐던 연교가 떠올랐을 것이다. 

 

그가 느낀 인간적인 모멸감은 자신의 지울 수 없는 정체성인 냄새에서 비롯되었다. 기택은 코를 움켜쥔 박 사장의 행동을 인간에 대한 모멸과 무시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근세에게 계급적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순간 기택에게 근세는 자신보다 못한 더 낮은 계층의 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동일한 냄새를 가진 ‘사람’이었다. 기택과 박 사장이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의 문제, 존재의 문제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는 서로의 존재 자체가 문제가 될 정도 심각한 양극화 사회에 접어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존재 자체로 모멸감을 느껴야 하는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물론이다. 각자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자기계발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냄새나는 사람들과 함께 지하철에서 부대끼며 세상을 조금씩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각자도생을 위해 ‘산수경석’을 가슴에 안고 자신만이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환상에 빠질 것이 아니라, ‘Another brick’으로 살지 않기 위해 다른 삶을 꿈꾸는 것이다.

 

우리들 대다수는 노동자다. 하지만 함부로 바꾸어 쓸 수 있는 ‘Another brick’도 아니고, 주변 사람과 다른 특별한 ‘산수경석’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이 서로 계급적 동질감을 깨닫고, 지하철에서 서로 부대끼며, 기득권층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선다면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송민수(거제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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