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치한약수’, ‘서카포연고’, 누적 백분위……. 올해 수능 시험을 끝내고 반수 막바지에 이른 내가 모의 지원 프로그램을 돌리고 입시 정보를 찾으면서 셀 수 없이 보는 단어이다. 한국의 교육에서는 서열화가 너무나도 일상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진다.
중학교 3년간의 성적으로 학생들을 줄 세운 지표가 고입에 활용되고, 고등학교에선 내신 성적과 수능은 물론, 각종 동아리 활동이나 자치 활동마저도 그것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겨서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대학 입시의 서열 최상위(누적 백분위로 약 상위 1% 내외)에 위치한 의대 집단 안에서도, 그 안에서의 입결이나 부속 병원의 규모 등에 따라서 소위 ‘메이저 의대(빅5)’, ‘인서울 의대’, ‘삼룡 의대(인제대, 순천향대, 한림대)’와 같이 서열을 나누기 일쑤이다.
이러한 대학 서열화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매개체가 바로 신입생들이 학교/학과별로 공동 구매하는 점퍼, 소위 ‘과잠’이다. 과잠에는 흔히 소속 대학교, 학부/학과의 이름과 로고가 새겨진다. 과잠은 자신이 속한 학교와 학과에 소속감을 가지게 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 소속감은 대학 서열에 따른 학벌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으며, 우월의식이나 차별 등으로 발현되게 된다.
심지어 일부 상위권 대학, 그 중에서도 특목고/자사고 출신 재학생 비율이 높은 학교에서는 대학교 과잠에 자신이 졸업한 고등학교 이름을 새기는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 ××과학고 출신 ××대 학생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적지 않은 영재학교/특목고/자사고들에서는 고등학교 로고가 새겨진 학교 점퍼를 맞추기도 한다. 이제는 출신 대학교만이 아니라 출신 고등학교까지 구분짓기를 위해 드러내게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고교 서열화가 진행되었다는 신호이자 차별이 더욱 촘촘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초·중·고 12년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대학 입시를 이번까지 두 번 치러 본 입장에서 고입/대입 수험생들은 학원가와 입시 커뮤니티 등을 통해 학벌주의와 대학 서열화를 노골적으로 학습하고 재생산한다는 것을 느꼈다. 유명 학원 강사들은 또래 친구들을 짓밟고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쓴소리’를 내뱉고, 서열 아래에 위치한 지방대를 적극적으로 조롱한다.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공립/사립을 막론한 절대 다수의 고등학교에서 명문대 진학자 수를 늘리기 위해 우등생에게 교내 상을 몰아주고 생활기록부를 좋게 써 주려 애쓰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그리고 매년 말 대학 입시 실적으로 자교가 좋은 학교임을 홍보한다.
대입 수시(학교생활기록부) 전형 확대 혹은 소수자 집단에 대한 적극적 우대 조치 같은 방법으로는 절대 대학 서열화로 고통받는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불리한 상황에 놓인 소수자 학생들을 아무리 유리하게 만들어 줘 봤자 누군가는 승리하고 누군가는 패배하는 상황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 서열화를 해소하고 학력/학벌에 따른 차별을 없애 나가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대학 입시 정책은 킬러 문항을 없애느니 난이도를 어떻게 하느니, 수능 비중을 늘리느니 마느니 하는 것으로 갑론을박할 게 아니라, 교육이 서열화와 차별의 장이 된 현 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태문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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