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 편중된 사회
학생인권법을 반대하는 교사
숱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학생인권법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학생인권 보장에 관한 법률안’(이하 ‘학생인권법’)은 지난 4월 서울시의회가 폐지시킨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을 상위법에 그대로 담은 것이다. 학생인권법은 제1조에서 “이 법은 학생의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모든 학생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제8조에서 25조까지 명시한 학생인권은 ‘차별받지 않을 권리, 교육에 관한 권리, 건강과 안전에 관한 권리,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정보의 권리, 양심·종교·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 복지에 관한 권리, 자치 및 참여의 권리, 징계 및 징계 절차에서의 권리’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규정하고 있는 기본적인 권리들이다.
또한, ‘제6조 학생의 책무 ① 이 법에서 규정된 학생의 권리는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보장된다. ② 학생은 다른 학생의 학습권과 학교 및 교직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부당하게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을 두어 “학생인권 때문에 교권이 침해된다”는 우려를 불식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모든 교사단체는 학생인권법 제정을 반대하고 나섰다. “학생인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인권법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반대 이유에 대해서는 ‘학생인권 침해 권리 구제 기구인 학생 인권센터가 교사를 과도하게 규제할 것’이라는 우려와, ‘교사의 업무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교사에게 미칠 영향이 우선이고 학생인권은 후순위다.
작년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 5법, 서이초 특별법 등 교권 보호를 위한 법령들이 대거 발의, 개정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교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백승아 의원이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의안번호 2201441)’에 대해서는 교사 단체와 학생 인권 단체들의 찬반 공방이 뜨겁다. 현재 교육위 법안소위에서 심사 중인 이 법안은 ‘정당한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학생은 별도 공간으로 분리시키고, 필요한 경우 학생에게 물리적으로 제지’하는 것이 골자다.
해당 법안에서는 물리적 제지에 대해 ‘학교의 장과 교원은 교육활동 중 자신 또는 타인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긴급한 경우에는 학생의 행위를 물리적으로 제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물리적 제지에 대해서는 ‘아동복지법’ 상 금지행위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도 추가했다.
학생에 대한 분리 조치는 ‘학교의 장과 교원은 학생이 교육활동을 방해하여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법에 따라 해당 학생을 분리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9월 25일 진행된 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을 보면 백승아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은 찬성, 국민의힘 조정훈, 서지영 의원과 조국혁신당 강경숙 의원은 반대하고 있다. 교육위 전문위원이 제출한 검토보고서에는 “보건복지부도 아동 권리 보호 차원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므로 법률에 규정하기에 앞서 사회적 논의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하면서, “학생의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존재하므로, 물리적 제지가 허용되는 범위를 다소 엄격하고 명시적으로 규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적혀 있다.
또한 분리 조치에 대해서도 전문위원은 “학생에 대한 인권 침해 우려가 있으므로, 그 내용을 명확하고 엄격하게 규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의견을 밝혔고, 교육부도 “기본권 침해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해, ‘수업 중 일시적’으로, ‘필요한 최소한도에서 사용’하도록 명시하고 분리조치 적용 기준 및 방법 등 세부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위임하도록 수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학생인권 단체들은 9월 27일 국회 앞에서 이 법안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정치하는엄마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등 ‘학생 인권법과 청소년 인권을 위한 청소년 시민 전국행동(청시행)’ 소속 단체들은 “작년 9월부터 시행된 교육부 고시 이후 수업 중에 잠을 잔다는 이유만으로 교실 밖으로 내쫓는 등 학생 분리와 물리적 제지가 교사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남용되고 있다”면서, 실제 학생들이 경험했던 부당한 조치 사례들을 발표하며 ‘분리와 물리적 제지의 법제화’를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번 달부터 서울의 모든 학교에 ‘학교 방문 사전 예약제’가 시행됐다. 각 학교 학부모들에게 발송된 가정통신문에는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외부인의 무단 침입에 따른 학교 내 안전사고로부터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10월 1일부터 관내 모든 학교에서 ‘학교 방문 사전 예약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면서, “학부모님께서는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협조해 달라”고 적혀 있었다. 이를 해석하면, 학부모는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을 위협하는 외부인이고, 학부모가 사전 예약을 하지 않고 학교를 방문하는 것은 무단 침입이라는 의미다. 이제 학부모는 학생 상담을 하려면 방문 희망일 7일 전까지 방문 신청을 하고 관리자의 승인을 거쳐야만 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 이마저도 교직원이 출입제한을 요청하거나 방문 목적이 불명확하거나 출입 관리자의 정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출입 거부 및 퇴교 조치 된다. 가정통신문 하단에는 “퇴교 요청 불응 시 교장이 관할 경찰서에 신고할 수 있다”고 굵은 글자로 강조돼 있었다.
교사와 관리자들은 그동안 교육의 3주체를 ‘학생, 교사, 학부모’라고 했던 것에서 ‘학생, 교사, 학교(교육과정)’라고 말을 바꾸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학부모 지우기’가 시작된 것 같다. 교사와 학부모는 학생의 성장을 위해 협력하는 파트너인데 한쪽이 사라지면 균형을 잃게 된다.
교사에게 편중된 사회, 가려진 학생들
교사의 권익에 관련된 법령은 수도 없이 만들면서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단 한 개의 법령을 반대하기 위해 똘똘 뭉친 교사들의 집단이기주의를 보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던 교사들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안타까운 심정이다.
조정훈 국회의원이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받은 통계자료에 따르면, 작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초중고생이 214명으로 역대 최다 인원을 기록했다.(김소희 기자, 「작년 초중고 학생 자살 214명, 역대 최고치 … 8년 만 두 배 늘었다」, <한국일보>, 2024.09.26) 이는 최근 8년 동안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고, 10명 중 4명은 중학생이다. 주요 요인(중복 집계)으로는 정신건강 문제(68건), 가정 문제(58건), 대인관계 문제(57건), 학업·진로 문제(35건)순이고, 원인 미상은 71명이다. 이 중 정신건강 문제는 2015년 8건에서 8배 넘게 증가했으며, 대인관계 문제도 2022년 27건에서 두 배 이상에 달한다. 하지만 위기 학생들을 위한 상담 지원 시설과 인력이 부족해 전국 초중고교 네 곳 중 한 곳에 위클래스(상담실)가 없다. 반면 학생 상담 건수는 2015년 262만 3,699건에서 2023년 367만 5,840건으로 약 40퍼센트가 늘었다.
학생들의 정신 건강에 빨간불이 켜진 지 이미 오래다. 전문가들은 “교육 주체들이 경각심을 갖고 고위험군 학생들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는 아무 힘도 없고 존재감도 없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데에 관심이 없다.
우리 사회가 닫힌 교문 뒤에 가려진 키 작은 S.O.S 신호들을 못 보고 있는 건 아닌지, 큰 함성에 묻혀버린 작은 목소리를 못 듣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가 정말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성찰이 필요하다. (회장 이윤경)
출처 : 카톨릭 뉴스 지금 여기(https://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002) <저작권자 ⓒ 참교육 학부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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