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교육을 없애야 대학 서열이 사라진다
여는 말
올해 대학입시 응시자가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입시 전문가들은 이를 의대 정원이 증가한 여파라고 보는데, 언론 보도에 따르면 9월 13일 수시모집 원서접수를 마감한 전국 39개 의대(의학전문대학원인 차의과대 제외·정원 내 기준)에 총 72,351명이 지원했다. 전년(57,192명)보다 15,159명(26.5%) 늘었다. 수능 응시생도 대폭 늘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9월 11일 발표한 ‘2025학년도 수능 응시원서 접수 결과’에 따르면 올해 수능에 응시한 522,670명 중 졸업생과 검정고시생 등 ‘N수생’이 181,893명으로 2004학년도(198,025명) 이후 21년 만에 최다 인원을 기록했다. 이 중 검정고시 출신 수능 응시자는 20,109명으로 1995학년도(42,297명) 이후 30년 만에 최고치라고 한다. 대학 입시를 위해 학교를 자퇴하고 학원에서 수능 공부를 하는 경우가 증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학에 다니다 입시에 도전하는 반수생 규모도 역대 최다일 것이라고 한다.(“종로학원은 수능 6월 모의평가와 수능 지원자의 차이를 감안해 추정한 결과 올해 반수생이 93,195명으로 관련 통계가 공개된 2011학년도 이후 가장 많다고 밝혔다.”(최예나 기자, <동아일보>, 2024.9.11.)
대학통합 네트워크가 지역 격차 해소에도 도움이 되길
교육계 전문가들은 국립대학 10곳부터 통합네트워크를 시도해 보자고 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는 정부의 의지만으로도 지금 당장 가능한 일이다. 이미 지방 거점 국립대학교들마저 신입생 모집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학 측도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 국공립대학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공영형 사립대학, 독립형 사립대학까지 확대하는 단계적 방안은 현재 시점에서는 최선이라고 본다. 그러나 일명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불리는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를 ‘지방대 죽이기’라는 시각으로 보고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으니 이에 대한 설득도 필요하다.
지역연합 대학체제를 구축하는 방안은 각 지역별·대학별 상황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선택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때 일반대학뿐만 아니라 전문대학까지 포함시켜 연구와 직업 분야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학생들의 선택 폭을 넓힐 것을 제안한다. 요즘엔 전문대학도 3년을 마치고 심화 과정을 이수해 학사 자격을 부여하는 곳들도 많다. 일반대학도 연구 중심의 학과뿐만 아니라 전문대학에만 특화되었던 학과를 신설하고 있다. 학생이 자신의 진로를 중심으로 필요한 과목을 선택해 이수할 수 있도록 대학 간 문턱을 낮춰야 한다. 이는 같은 권역 내에서도 도심지와 외곽 지역의 격차와 불균형이 있는 현 상황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대학 서열 해소는 학생 줄 세우기부터 없애야
대학입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면 누구나 치를 수 있는 ‘자격고사’가 되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등급을 나눠 입학 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평가 방식은 당연히 내신과 수능 모두 절대평가여야 하고 더 나아가 이수/미이수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9등급이냐 5등급이냐, 상대평가냐 절대평가냐의 사고를 벗어나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은 누구든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
대학서열 해소는 경쟁 교육 철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각 학교별, 학과별로 선발을 위한 입시 전형은 필요하다. 중도에 이탈하지 않을 학생들을 선발하려면 다양한 전형을 보장해 전공 적합성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 순으로 대학에 우선 제공하는 구태의연한 입시 제도를 고수하는 것은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 맞지 않는다.
반발과 충격을 줄이자는 과도기 정책을 내세우다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게 지금 한국의 교육 정책이다. 한국 현실에 걸맞은 대학입시제도(합격/불합격 방식의 대입 자격고사로 바로 시행하는 것)로 직진하는 획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경쟁이 아닌 협력 교육을 견인하는 입시 제도로
역대 정부에서 대학입시제도 개혁을 위해 공론화 등 여러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둔 적은 없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교육 정책은 말 잔치에 그쳤고 윤석열 정부는 그나마 내딛으려는 발목을 잡아 우리 교육을 이명박 정부 시절로 후퇴시키고 있다. 국민참여형 2022 개정 교육과정을 뒤엎어 버리고 자사고, 외고를 존치시켜 고교 서열화를 공고히 했으며 일제고사 격인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도 부활시켰다. 특히 2028 대입 제도는 상대평가 방식을 고수하며 2025년부터 전면 실시되는 고교학점제를 무력화시켰다.
현재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병폐는 수시, 정시, 9등급, 5등급의 대학입시제도가 아니라 상대 평가 방식의 경쟁 교육이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서 100점을 맞아도 다른 학생들이 잘못해야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상대 평가 방식은 교실을 학원으로 전락시키고 끝없는 사교육을 조장한다. 내신이든 수능이든 상대 평가가 존재하는 한 성적에 좌우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과목을 선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소수의 학생이 원하는 과목이더라도 개설하라고 권고하는 고교학점제의 취지는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어 원래 취지대로 교과목이 다양해지고 평가 방법이 제각각이 된다면 한 가지 기준으로 등수를 매겨 학생들을 일렬로 줄 세우는 것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또한, 1등급부터 5등급까지 줄을 세우기보다 이수/미이수의 성취 여부만 구분한다면 친구와 함께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서로 돕고 협력하는 교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맺는말
지금의 대학 서열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이 가는 학교, 즉 상위권 학교가 있기 때문에 매겨진 순위다. 하지만 고교학점제처럼 모든 대학에 공부 잘하는 학생이 아니라 해당 전공에 적합한 학생이 입학하고, 평가 기준이 상이해서 누가 더 우수한 학생인지 비교할 수가 없게 된다면 서열을 매기는 것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국가 최고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은, 언제 자퇴할지도 모르는 입학생들의 성적 덕분에 아무 노력 없이 득템한 순위가 아니라, 열심히 가르치고 지원한 결과로 일궈낸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연구 실적, 논문 발표, 직업 연계 등의 실제 성과로 평가받는 것이 옳다. 1등급 학생들이 많이 입학했다고 앞쪽 순위를 차지하는 것이 부끄러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 S.K.Y 등의 간판이 아니라 특화된 전문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대학이 많아져야 한다. 이미 특화된 성과로 회자되는 대학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점은 희망적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입시 제도, 제자리걸음인 교육, 생존에 급급한 대학들은 서서히, 순차적으로가 아니라 긴급히, 한꺼번에 바꿔야 한다. 지금도 많이 늦었다. (회장 : 이윤경)
2024년 9월 24일 ‘현 시기 대학서열 체제 해소 경로와 대입제도 토론회’ 토론문입니다. <저작권자 ⓒ 참교육 학부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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