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위한 밥상을 차리자
여는 말
‘어른 편익 위주의 세상이 아닌 아이살림·생명살림으로 아이 행복 세상을’ 위해 애써온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학술대회 토론자로 제안을 받고서 딱 맞는 글이 떠올랐다. 우리 마을 ‘도서관 속 별난학교’ 지역아동센터의 최지선 센터장님이 아들 성우와 네 살 때부터 일곱 살까지 나눈 대화를 기록한 ‘엄마의 겁나는 마음을 내 마음에 가져갈게’라는 책 속에 담긴 글이다.
솔 방 울
유치원 가는 길. 매일 만나는 소나무.
하나 남은 솔방울에게 “혼자 남았구나. 외롭지? 조금 있으면 새가 놀러 올 거야. 내가 유치원 갔다 와서 또 말 걸어줄게.”
다른 글을 하나 더 옮겨본다. 겁이 많고, 친구들과 갈등을 회피하는 아들을 못마땅해하던 아빠가 “그렇게 피하기만 하면 안 돼. 약해 보이면 무시당한단 말이야.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지? 너 강한 사람이 될 거야? 약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묻자 “아빠, 난 좋은 사람이 될 거예요.”라고 대답한 성우.
수많은 성우에게 우리는 배우려 하지 않고 가르치려고만 하는 건 아닌지... 그게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교육’이라고 자만하고 있는 건 아닌지 화두를 던져 본다.
영화 <오징어 게임>이 유명해졌던 2021년, 시·도교육청에서 관할 초등학교에 공문을 보냈다. 학부모들에게 배포하라고 한 ‘특정 매체를 모방한 학교폭력 사례 발생 우려’ 가정통신문에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하며 탈락한 친구를 때리는 행위’, ‘딱지치기 하고 지면 뺨을 때리는 행위’ 등의 예시를 들어 놀이가 폭력으로 변질된 게임을 하지 않도록 가정에서 지도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윤근혁 기자, 「오징어게임 후폭풍? … “딱지치기 하고 뺨 때리면 안 돼요” 공문」, 오마이뉴스, 2021. 10. 29.)
이는 아이들 잘못이 아니다. 학부모의 세대가 달라지고,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아이들은 이런 놀이를 해 본 적이 없었고, 단지 영화로만 봤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지는 사람의 뺨을 때리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규칙이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왜 학교 폭력에 해당하는지 아이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도 이해를 못한다. 그 당시 참교육학부모회 상담실에 초등 1학년 학부모가 전화해서 “우리 아이는 오징어 게임을 따라 했을 뿐인데 왜 학교폭력 가해자라고 하냐”면서 억울해 했다.
미디어만 문제가 아니다. 놀이터를 없앤 자리에 주차장과 어른들의 운동 기구가 들어섰다. 학교는 100미터 달리기도 못할 정도로 운동장이 작아지고, 심지어 서울시교육청은 주상복합 개념의 ‘주교복합’ 설립을 계획 중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이 놀이다. 임신했을 때부터 의사는 태아가 ‘잘 노는지’ 묻는다. 놀이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성장시키는 ‘밥’이고, 잘 노는 아이가 건강하게 잘 큰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놀이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놀이 교육과정을 만들고 수업으로 진행한다. 교과목에 ‘놀이’ 글자만 덧붙인 ‘또 하나의 학습’이 되어 버렸고, 각종 프로그램과 교구를 개발한 놀이 상품이 늘어났다. 현재 어린이집과 유치원들이 각자 해석해 적용하고 있는 놀이 중심 교육과정에 대해서도 실태 파악과 심도 깊은 숙의가 필요하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밥을 주지 않는 것과 같은 수준의 ‘아동 학대’다.
참고로, 참교육학부모회에서 시작한 ‘와글와글 놀이터’는 학부모들이 놀이터 이모가 되어 학교와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놀이를 돌려주는 활동이다. 특별한 강사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 아이들은 긴 줄 하나, 공 하나만 있어도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방법을 찾아 논다. 아무 것도 없어도 어떻게든 놀 수 있는 능력이 아이들에겐 있다. 놀이터 이모는 단지 안전 때문에 지켜보는 역할이다. 강원도교육청의 ‘놀이밥 100분’은 와글와글 놀이터에서 착안해 강원도의 모든 초등학교에서 하루 100분의 놀이 시간(자유 시간)을 보장한 정책이다. 교육감이 바뀌면서 실시 학교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안타깝다.
교육의 개념과 범위 등이 달라져야 한다. 돌봄은 교육보다 하위 개념이고, 돌봄과 교육은 구분해야 한다는 식의 논쟁은 이제 끝내야 한다. 이는 어른들의 필요에 의해 이해관계자들이 구분한 것이지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교육이다. 자녀를 키운 부모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태교부터 시작해 출생 후 모든 돌봄은 교육이 아닌 게 없었다. 눈을 맞추고, 음식을 삼키고, 만져보고, 대화하는 것들은 시각, 미각, 촉각, 청각 등을 발달시키는 ‘교육’이 맞다.
교육(敎育)에 가르침(敎)과 돌봄(育)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니 영유아 보육·교육이 아닌 영유아 교육으로 통칭하는 것이 옳다. 초등 돌봄(늘봄을 포함한) 역시 ‘방과후학교’나 ‘방과후교육’으로 통일해야 한다.
돌봄이 포함된 ‘교육’ 개념도 시대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여전히 ‘계획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관계 속에서 서로 배움이 일어나는 ‘함께 배움’에 방점을 찍고 교육 현장에서 이를 구현하는 교육자와 마을교육 활동가들도 많아지고 있다.
교육부의 2022 교육과정 개정 추진위원으로 참여했을 당시 교육과정 총론에서 ‘인재상’을 ‘인간상’으로 바꾸고 ‘생태 전환 교육’, ‘노동교육’ 등을 포함시키는 성과가 있었지만, 최초의 국민 참여형 교육과정은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후퇴하고 말았다. 하지만 시대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교육 개념과 범위, 내용들은 국가 주도의 획일적인 교육과정을 강요한다고 해도 현장에서부터 상향식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다음의 사례가 이를 증명해 준다.
지난 5월 21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발언대에 선 초등학교 6학년 한제아 학생은 2022년 영유아를 비롯한 어린이 62명으로 구성된 ‘아기 기후소송’ 청구인단에 참여한 당사자다.
한제아 학생은 “저는 아기 기후소송에 참여한 예순한 명의 동생들과 두 살 된 사촌 동생 아윤이를 대신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동생이 겪을 미래에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대부분의 어른들은 기후위기 해결과 같은 중요한 책임에 관해 대답을 피하는 듯하고 어쩌면 미래의 어른인 우리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 같다”면서 “기후변화와 같은 엄청난 문제를 우리에게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면 우리는 꿈꾸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호소했다.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면서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마무리했다. 이날 한제아와 다른 청구인들은 정부의 탄소중립 기본법 상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불충분해 생명권·환경권·세대 간 평등권 등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강조했다.(김나연 기자, 「헌재에 울린 초등학생의 호소 … “지금 하지 않으면 모든 걸 포기해야 할 수도”」, 경향신문, 2024. 5. 21.)
유보통합은 거부할 수 없는 의무다. 대한민국 영유아 교육의 성패는 유보통합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유보통합은 초저출생 위기에서 간신히 살아날 수 있는 심폐소생술과 같다. 그런데도 교육부, 교육청, 지방자치단체 누구 하나 응급실에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 응급조치를 끝내면 그 후에 각자 하던 일들만 하겠다는 식이다.
대통령 선거 이후부터 작년 12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 모든 순간이 쉽지 않았다. 각자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연대체를 구성하는 것부터, 국회의원을 찾아다니며 법안 통과를 촉구했던 것까지 수많은 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데, 다시 제동이 걸렸다. 올해 2월 22일에 시도교육감협의회가 보도자료를 통해 유보통합 유예를 제안하더니 딱 그 수준에서 멈춰버린 것 같다. 정부조직법이 개정되었는데도 행정 통합조차 제대로 상(像)을 잡지 못하고 보여주기식인 시범 유치원·어린이집 운영만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식적으로, 일반 기업체에서 두 개의 부서에서 각각 관리하던 지점들을 한 부서로 통합할 때 현장의 지점들을 시범 지점으로 운영해 보는 것이 부서 통합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흡수된 부서에 책정되어 있던 예산과 인력, 지점들을 통합 부서에 그대로 이관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점검하는 시범 기간을 갖는 게 더 필요하지 않나?
그런 상식적인 기준으로도 세종시교육청을 시범 교육청으로 지정해 운영해 보자는 제안은 매우 타당하다. 세종시와 세종시교육청을 통합해 발생하는 문제가 무엇이 있는지 파악해 타 교육청에 도움이 될 유보통합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약속한 2026년 전면 시행을 지키려면 시간이 많지 않다. 세종시교육청 모델을 만들어도 그것을 타 시·도교육청의 교육지원청에까지 적용시키려면 더 많은 경우의 수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교육부와 교육청, 시·도청이 서로 떠넘기고 뒷짐 지고 있는 동안 2026년이 되면 교육감 선거와 시·도지사 선거가 치러진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맺는 말 한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온 마을은 배움터가 된다. 가족, 교사, 친구뿐만 아니라 자연, 시설, 문화 등 모든 것이 아이에게 ‘배움’을 주고, 우리는 아이에게 배운다. 그러나, 아이들이 사라진 마을에는 새로운 배움이 끊어지고 관습만 남을 것이다. 이미 눈앞에 다가온 우리의 내일이 그렇다.
아이들에게 몸을 성장시키는 밥, 마음을 성장시키는 밥을 제공하는 것은 어른들의 의무다. 지금 당장, 우리 모두, 아이들을 위한 밥상을 차리자. 하나 하나 정성을 꾹꾹 담아……. (회장 : 이윤경)
<이 글은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2024년 춘계 학술대회의 토론문입니다.> <저작권자 ⓒ 참교육 학부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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