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담장 너머를 향한 발돋움 학부모 교육 의무화 더 나아가야
학부모 혐오 사회
3월은 새 학년이 시작되는 달이다. 교사는 가장 바쁜 달이고 학생과 학부모는 가장 긴장하는 달이다. 특히, 초등학교 학부모는 담임교사가 누구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복불복’, ‘운’, ‘로또’라고 불릴 정도로 담임교사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불복’으로 유명한 교사가 몇 반을 맡게 되었는지, 어느 학교로 전근을 갔는지 지역 내 학부모들 사이에선 하루 만에 소문이 쫙 퍼진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학부모 블랙리스트가 공유된다. 학생도 마찬가지다. 문제아가 많은 반을 뽑게 된 교사는 새 학년을 한숨으로 시작한다.
어느 집단이나 문제를 일으키는 구성원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유독 ‘학부모’는 직접 관계를 맺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회적, 국가적으로 과도한 비난을 받는다. 학부모 총회를 검색하면 해마다 어김없이 총회 옷차림, 명품 가방 등의 기사와 누리 소통망(SNS) 글이 적지 않다.
해방 이후 학교 재정을 자발 후원했던 후원회부터 사친회, 기성회, 육성회, 어머니회를 거쳐 학부모회에 이르기까지 학부모는 늘 부정적인 이미지였다. 치맛바람, 완장, 맘충, 괴물 등의 수식어가 붙었고, 그렇게 본인 자녀만 감싸는 이기적인 존재로 박제되었다.
드라마에서도 학부모 희화화가 다반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부모를 폄하하는 사람들 역시 학부모다. 학부모는 자녀를 둔 부모라면 선택권 없이 당연히 붙여지는 이름표다. 싫든 좋든.
학교에는 학부모 자리가 없다
대부분의 학교가 3월에 학부모 총회를 마쳤다. 초·중등교육법과 시행령, 시·도교육청 조례에는 학교운영위원회(이하 학운위) 학부모 위원과 학부모회 임원을 학부모 전체 회의에서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학운위 학부모 위원은 3월 31일에 임기가 만료되는데 규정에 따라 10일 전인 21일까지는 차기 위원을 선출해야 한다. 하지만 학부모회는 학운위에 비해 규정이 느슨해서 3월이 아닌 전년도 2학기에 임원을 선출하거나 학부모 총회가 아닌 학급 대표들이 모여서 선출하는 학교도 있다.
2013년 경기도교육청을 시작으로 만들어진 학부모회 조례는 2024년 3월 기준, 전국 17개 교육청 중 대구를 제외한 16곳에 제정되었다. 그렇지만 지역에 따라 조례 시행과 안착 정도는 격차가 크다. 그나마 학부모의 교육 참여가 활성화됐던 지역들도 코로나19 공백기 이후 다시 원위치 되었다. 게다가 작년 S초 사건 여파로 학부모는 올해부터 학교 밖으로 쫓겨났다.
학부모는 학교의 주인인 적이 없다. 언제나 학교가 허락하는 만큼, 딱 그만큼만 허용됐을 뿐이다. 학교는 필요할 때만 학부모에게 의자를 내주고, 초대하지 않은 방문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내 학교, 우리 학교는 가정통신문에만 존재할 뿐이다.
요즘엔 현관에 도어락을 설치하고 교사, 학생에게만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학교도 있다. 외부인 출입으로 인한 안전상 조치라면서 왜 학부모에게도 비밀인지 이해가 안 된다. 학부모도 학교 안전을 위협하는 외부인인가.
학부모 참여를 넘어 학부모 자치로
“학부모회 임원은 몸을 쓰고, 학운위원은 머리를 쓴다”는 말이 있다. 학교 활동을 해 본 학부모라면 대부분 아는 얘기다. 학부모회 임원은 아무도 맡지 않으려 하지만 학운위원은 입후보자가 많아 학교가 임의로 후보 접수를 마감하기도 한다. 정수 이내로 입후보할 경우 무투표 당선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적 경선을 차단하는 명백한 선거 개입인데도 여전히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또, 학부모 총회에서 선출된 임원에게는 선관위원장이 당선증을 전달해야 되는데, 학교장 명의로 된 임명장을 수여하는 오류도 부지기수다.
이처럼 학부모는 ‘자기 일을 스스로 다스릴’ 능력이 없다고 여긴다. ‘학생 자치’는 통용되지만 학부모 뒤엔 ‘자치’가 아닌 ‘참여’를 붙인다. 학부모는 주체가 아닌 대상인 것이다. 학부모를 교육 활동 참여자가 아닌 주체로 인정하는 것은 학교와 교사의 책임을 학부모와 분담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이미 혁신학교를 비롯해 여러 모범 사례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학부모 참여를 넘어 학부모 자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첫째, 학부모회를 조례가 아닌 초·중등교육법에 의해 필수 기구로 보장해야 된다. 그래야 학운위와 동등한 위상을 갖고 학부모회가 제대로 설 수 있다.
둘째, 학부모회를 학교 조직도 안의 공식 기구로 인정하고, 학부모들의 개별 의견은 반드시 학부모회를 거쳐서 공식적으로 제안하도록 해야 한다. 개인의 민원이 아닌 학부모회가 의견으로 제시하고 학교가 이를 수렴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학교 공동체가 회복될 수 있다.
셋째, 학교 교육과정에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 경북의 한 공립중학교는 매년 2학기 말에 교육과정 평가회를 열어 전교생과 학부모들을 초대해 토론하고, 여기에서 나온 의견을 다음 해 교육과정에 반영한다. 학생 수가 많아 이런 방식이 불가능하다면 교육과정위원회에 학생, 학부모 위원을 교사와 동수로 구성해 의견을 수렴하면 된다. 구성원 비율상 학생 위원이 교사, 학부모보다 더 많이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부모가 주체로 서는 ‘학부모 교육 의무화’
교육청들이 앞다퉈 ‘학부모 교육 의무화’를 내세우고 있다. 학교폭력 예방 교육부터 아동학대, 성폭력, 가정폭력, 자살 예방 교육 등 학부모뿐만 아니라 모든 어른이 당연히 알아야 할 내용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e-알리미에 탑재해 놓거나 가정통신문으로 대체하는 형식에 그친다.
‘경기도교육청 온품 학부모교육 추진계획’에 따르면 2024년 학부모 법정 의무교육을 총 10개 분야, 연간 12회 이상 받아야 한다. 맞벌이 가정은 물론이고 외벌이 가정 학부모여도 모두 이수하긴 힘들다. 그러다 보니 “했다 치고, 눈 가리고 아웅”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올해 아들 학교의 학부모 총회에서 가정폭력, 성폭력, 선행교육 예방, 부정청탁 금지 등 7개 분야의 학부모 교육 자료를 다섯 장짜리 출력물로 받았다.
학부모 단체들도 학부모 교육을 의무화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학부모를 계도의 대상으로 보고 정부와 학교가 필요로 하는 연수를 강제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부모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면 자녀를 나와 동등한 온전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 내 자녀가 또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부모의 ‘교육적 역량’을 길러야 한다.
학교는 모든 구성원의 안전하고 평화로운 학교 생활을 위해 학부모가 알아야 할 필수 정보들을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정부와 기업은 학령기 아동을 둔 부모가 교육권을 구현하도록 휴가 항목에 ‘부모 교육’을 추가하는 식으로 적극 지원해야 한다.
참고로, 교육 이수를 강제하고 패널티를 주기보다는 학부모용 교육과정을 대면·비대면으로 개설하고, 강좌를 수강하면 수료증과 이수 시간을 적립해 혜택을 줄 것을 제안한다. 공공장소 주차요금 할인, 문화 공연 초대권, 지역 페이로 전환 사용, 공공 행사 및 시설 예약 우선권 등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 단위에서도 가능한 정책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폭력, 차별, 혐오,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된 이후가 아니라 생애 주기 전체에 걸쳐 인권 감수성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하다. 훈육과 체벌이 당연했던 아동·청소년기를 보낸 부모들이 민법 915조 징계권(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이 폐지되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달라지기는 어렵다. 가정, 학교, 사회.... 내 키만큼 쳐진 담장 너머를 보자. 지금 필요한 건 발.돋.움이다. (회장 : 이윤경)
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에 2024년 4월 2일 기고한 글입니다. <저작권자 ⓒ 참교육 학부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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