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다 아는 이야기일 거야’ 하는 마음으로 피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슬픔과 분노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520번의 금요일』을 마주하자, 멈춰있던 슬픔과 분노가 따뜻한 공감으로, 끈끈한 연대로, 뭉클한 희망으로 다시 피어났다. 때때로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눈물이 솟아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10주기 공식 기록집 『520번의 금요일』은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2014년 4월 참사 초기 언론은 연일, ‘육해공 총동원’, ‘사상 최대의 구조 작전’, ‘필사의 수색’이라 떠들었다. 하지만 현장은 무정부 상태였다. 불확실한 생존자 정보는 물론이고 구조와 수색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국가권력은 그 무엇도 제대로 하지는 않고,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에만 최선을 다했다. 아이들을 구조하는 일에는 무능했지만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는 일에는 유능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국가권력은 답답하게 튼튼하고, 저열하게 교활하고, 민망할 정도로 부끄러움이 없었다. 살아남은 세월호 피해자들은 이런 권력과 싸워야 했다. 내가 그냥 흘려버린 10년을 이들은 100년처럼 싸우며 살아야 했다. 진실을 밝히는 길은 멀기만 했다.
『520번의 금요일』은 국가답지 않은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며 상처를 입혔던 날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살아남은 이들은 자신과 같은 아픔을 남기지 않기 위해, 한 조각의 진실을 끌어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싸웠다. 이들이 싸워야 할 것 중 가장 힘든 것은 ‘피해자다움’이라는 굴레였다. 피해자다움이란 피해자라면 이러할 것이다, 또는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뜻한다.
“이 사회에서는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어요. 그러니 옷을 까맣게 입어야 피해자가 아니고, 맨날 우는 사람이 피해자가 아니다. 내가 먼저 당했으니, 당신들은 당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피해자다. 진실규명을 하는 것이, 그래서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막는 것이 피해자다움이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앞장서서 말해주는 사람이 진정한 피해자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이게 진짜 피해자다움이다.” - 준영 엄마 임영애(387쪽)
피해자다움을 의무로만 가득 채워놓은 것은 우리들의 편견일 뿐이다. 피해자에게는 질문할 권리, 진상규명 절차와 제도에 참여할 권리, 진실을 알 권리,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사과받을 권리, 배·보상을 받을 권리, 기억하고 추모할 권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10년 전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고, 기억하겠다고 했다. 안타깝지만 언제부터인가 지겹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위해서이다.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안타까운 죽음이 없도록, 다시는 사회적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기억은 단순히 예전의 일을 떠올리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쌓인 기억은 결국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정체성을 만들기 때문이다. 송민수(참교학부모회 거제지회) <저작권자 ⓒ 참교육 학부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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