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과 교권이 아닌, 인권과 혐오 세력의 문제
24년 4월 26일은 역사에 남을 부끄러운 날이다.
지난 4월 24일 충청남도의회가 충남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한 지 이틀 후에 서울시의회가 서울학생인권조례를 폐지했다. 2012년에 제정한 서울학생인권조례는 12년 만에, 2020년에 제정한 충남은 4년 만에 폐지된 것이다.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대변인은 학생인권조례를 폐지시킨 이유에 대해 “학생인권조례에 의한 과도한 확대 해석으로 인해 교사들은 훈육을 위한 가벼운 접촉이나 언행으로도 아동학대범으로 몰리고 처벌받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를 제정·시행하는 광역 지자체는 18개 시도 중 6곳에 불과하고, 조례가 없는 지역에서 학생인권이 침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 오히려 조례가 있는 지역에 그로 인한 교사와 학생 간의 마찰음은 계속되고 있었다”고 논평을 냈다.
교권과 학생인권의 대립 구도를 조장하고, 조례가 있는 6개 지역을 고립시켜 학생인권조례의 뿌리를 뽑겠다는 의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이 없는 지역보다 교권 침해 건수가 적었다는 통계자료도 발표된 바 있다.
또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역은 학생인권 침해 사안이 발생했을 때 그나마 학생인권센터에 권리구제 신청을 할 수 있지만, 나머지 11개 지역은 아동학대 신고 외엔 방법이 없다.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아동학대 신고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학생인권조례가 아동학대 신고를 나누어 부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인권침해 권리구제는 행정기관인 교육청에서 다루고 ‘권고’를 하지만, 아동학대는 사법기관에서 다루며 법적 시비를 다투게 된다. 학생인권 구제 기구를 두는 것은 아동학대 신고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헌법 10조에 명시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조항을 국민들의 눈앞에서 어긴 것이다.
그동안 충남도의회와 서울시의회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시켰다. 충남 사례를 짚어 보면 혐오 세력들의 폐지안 발의, 의회 통과, 교육감의 재의 요구, 부결, 폐지안 재발의, 전자 투표가 아닌 수기 투표를 거쳐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했다.
서울은 법적 소송까지 진행했음에도 시의회가 폐지안을 통과시켰으니 교육감이 재의 요구를 할 차례다. 하지만 국민의힘 의원 수가 3분의 2 이상이고, 수기투표 선례까지 있으니 서울학생인권조례가 기사회생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러한 혐오와 갈라치기는 윤 정권 시작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혐오 세력의 지지로 당선한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약속이었을 것이고, 이미 학생인권조례뿐만 아니라 도서관 내 도서 검열, 인권 교육 수탁 단체 변경, 각종 차별·혐오 방지 조례의 개정과 폐지 등 전방위적로 확대하고 있다. 혐오 정치가 공식 통과되어 학교 안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제는 입법기관인 국회의 몫이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구체화한 것이 법률이다. 하지만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에는 국민인 학생의 권리를 보장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거의 없다. 특히, 학생이 인권을 침해당했을 때 권리를 구제받을 창구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국제 규범을 이행하는 차원의 학생인권 보장 약속을 고작 조례의 형태로, 그것도 6개 지역에서만 제정한 것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아닌 학생인권법을 만들고 권리 구제 절차를 법률로 보장해야 한다.
22대 국회가 1호 법안으로 학생인권법을 제정하길 바란다.
더 이상 지난한 조례 싸움으로 시민들을 전장에 내보내지 말고 국회가 맨 앞줄에 나서야 한다. 조례 폐지 상황을 지켜보며 “학생인권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한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
교사노조 출신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는 ‘학생분리법’, 교총 출신 국민의힘 당선자는 ‘교권 강화를 위한 아동복지법’을 1호 법안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이를 바라보는 학부모와 학생들은 학생인권조례 폐지 상황보다 더 두렵다. 등교 거부 운동을 해야 되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교사들이 ‘학생인권조례 폐지 규탄 성명문’에서 “한 교육 구성원의 인권 선언을 지우는 방법으로는 다른 교육 구성원의 인권 역시 지킬 수 없다”고 한 것처럼 학생인권은 교사의 인권을 위해서도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 민주 시민 교육, 인권 교육의 부재가 지금의 혐오·차별 문화를 조장했다는 민심에 귀를 기울여 국회는 최우선적으로 이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둘째, 교육감 선거 연령을 만 16살로 낮춰야 한다.
교육감 선거 때만 등장하는 ‘교복 입은 시민’ 구호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마저도 두발과 복장에 관한 제한은 여전하다. 타인의 인권이나 학습권에 방해가 되지 않는 영역까지도 ‘학생다움’을 강요하는 학칙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교육감 선거 연령 하향’뿐이다. 학생의 의견이 반영된 교육 정책은 학생이 유권자일 때 가능하다. 22대 국회에서는 현행 만 18살 이상인 교육감 선거 연령이 만 16살로 하향하길 바란다.
더 이상 혐오 정치가 인권을 후퇴시키지 않도록 모두 함께 막아내야 한다. (이 글은 필자의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4월 29일자 논평에서 발췌했다.) (회장 : 이윤경)
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794) <저작권자 ⓒ 참교육 학부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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