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도 놀란, ‘있어도 없는’ 학생인권의 현주소
지난 2023년 4월 서울시의회 교육전문위원실은 폐지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폐지론자들의 주장 다수를 반박했다.
수석전문위원은 우선 학생인권조례가 기존 국내법과 국제협약에서 학생인권에 관해 규정된 사항을 확인하는 범위 내에 있다고 언급했고, 서울행정법원 판결을 인용하며 학생인권 관련 사무가 서울시 교육감에 속한다고 확인했다.
특히 차별-혐오 표현을 통한 인권침해가 금지되지 않을 경우 교육의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판시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언급하며, 학생인권조례의 수단적 적합성이 인정되고 필요성 또한 크다고 짚기도 했다.
조례 폐지 주장 측에서는 학생 인권은 이미 현행 법률로 충분히 보호받기에 별도의 법령 혹은 조례는 불필요하고, 교권과 학생 인권이 왜 동일선상에 놓여 논의되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학생은 교사에게 평가받는 위치에 있어 위계 관계에 있다는 점, 학칙 등 여러 규제로 인해 학생들이 기본 인권조차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을 무시한 것이다. 마치 합리적인 중재안 같지만 실제로는 모순으로 가득 찬 주장이다. 존중받지 못한 학생에게 존중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잔혹하고도 부당한 처사가 아닐까.
일각의 오해와 달리 학생 인권은 ‘학생이라서 특별히 갖는 권리’가 아니라 ‘학생 역시 보장받아야 할 인권’이다.
학생이 학교라는 특수성을 지닌 공간에서 사회 구성원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 합의에 기반한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체벌과 폭력, 차별에서 자유로울 권리들과 같은 ‘인권’은 의무의 이행이나 책임의 대가가 아니라 누구나 가진 기본권이다.
유엔 인권이사회(UNHRC)는 지난 1월 31일, 특별절차를 거쳐 한국 정부에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란’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이사회는 1990년 한국이 비준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모든 사람이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에 근거한 차별 없이 협약에 의해 인정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할 법적 의무가 국가에 있다”는 규정을 언급하며 국가가 학생들의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피해를 어떻게 구제하고 있는지 제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이 2019년 한국에 대한 심의에서 “한국은 아동을 혐오하는 국가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 것도 이 문제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지난 2016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의 ‘학교생활에서 학생의 인권 보장 실태조사’를 보면 학생인권조례의 유무에 따라 인권 침해 경험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결국 이 모든 논쟁의 시발점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각각 다른 잣대로, 학생의 인권을 조례로 부실하게 보장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조례의 유무나 그 내용의 차이에 따라 각 지역의 학생들은 서로 다른 수준의 인권을 보장받고 있다. 따라서 어느 지역의 어느 청소년도 소외받지 않기 위해서는 학생 인권을 법령의 형태로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일명 ‘학생인권법’이라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더불어민주당 박주민 대표발의)이 2021년 발의되었으나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교에 최소한의 기준과 잣대를 제공하는 법령이기에, 국회가 하루빨리 논의하여 통과시켜야 마땅하다.
이미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유엔이 지속적으로 개진하는 의견과 이미 가입한 「아동권리협약」 등 다양한 국제협약을 바탕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제는 일각의 종교적 믿음과 반인권적 주장에 편승한 소모적 논쟁은 뒤로 하고, 사회적·정치적 약자인 어린이·청소년을 위해, 그리고 궁극적으로 한번쯤 어린이였고 청소년이었던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해 학생인권법을 제정해야 한다. 그렇게 청소년의 인권을 확립하는 것만이 헌법이 전제하는 ‘존엄성을 가진 인격적 주체’인 인간상에 부합하는 길일 것이다. 수영(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저작권자 ⓒ 참교육 학부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삶·사람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