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성범죄는 개인이 아닌 사회 문제
불법 합성물, 허위 영상물을 의미하는 일명 딥페이크 사건으로 우리 모두 큰 충격에 빠졌다. 지난달 한 언론사에 피해자가 제보한 내용이 보도되면서 촉발된 딥페이크 사건은 국가 재난이라고 불릴 정도로 피해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해외 언론도 한국이 불법 합성물에 얼마나 취약한지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8월 28일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사이버보안 업체인 ‘시큐리티 히어로’가 발표한 ‘2023 딥페이크 현황’ 보고서 내용을 인용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7~8월 딥페이크 음란물 사이트 10곳과 영상물 95,820건을 분석한 결과 전 세계에 유포된 딥페이크 성 착취물에 등장하는 피해자 중 53퍼센트가 한국인이라면서, “한국은 딥페이크 성 착취물에서 가장 표적이 되는 나라”라고 했다.(박은영 기자, 「딥페이크 한국이 가장 취약 … 피해자 50%가 韓 여성」, <뉴시스>, 2024.8.30)
딥페이크는 신종 범죄, 개인의 일탈?
9월 3일 국회에서 ‘딥페이크 디지털 성범죄 예방과 대응책 마련을 위한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에서 이인선 국회 여성가족위원장(국민의힘 의원)은 딥페이크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여혐(여성 혐오)이니 남혐이니 그런 문제와는 전혀 다른, 개인에 관련된 일”이라며, “어느 한 부분의 문제로 너무 막 몰리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의 문제”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시큐리티 히어로의 보고서에 따르면 딥페이크 성착취물 피해자의 99퍼센트가 여성이다. 이는 성별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는 수치다.
개인의 일탈로 본다는 것은 개인이 책임질 일이지 정부가 책임질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딥페이크 성범죄가 가해자만 발본색원해서 일벌백계한다고 해결될까?
전문가들은 딥페이크 성범죄를 첨단 기술이 등장하면서 생겨난 ‘신종 범죄’라는 점만 강조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피해자의 불안감만 커질 뿐,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한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해 생긴 것이고, 텔레그램 본사가 협조를 안 해서 가해자를 잡지 못한다는 변명은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우리 사회가 구조적 성차별을 건드리지 않은 채 잘못을 저지른 개인만을 가려내 공동체에서 쫓아내는 손쉬운 방식만 반복해서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여성을 도구로 보는 배경이 강한 사회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기술도 여성을 해치는 방식으로 쓰인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했다.(정인선 기자, 「딥페이크 성범죄, 왜 유독 한국에 판치냐고?」, <한겨레>, 2024.9.6)
가해자를 처벌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피해자가 조심하면 될 일?
특히, 가해와 피해 측에 미성년자의 비율이 가장 높다는 부분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8월 30일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23년 경찰에 신고된 딥페이크 사건의 피해자 총 527명 중 59.8퍼센트(315명)는 10대였다.
또한, 가해자 중 미성년자 비중도 늘어났다. 딥페이크 사건으로 입건된 가해자 중 1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65.4퍼센트, 2022년 61.2퍼센트, 2023년 75.8퍼센트였고, 올해 1~7월까지 집계된 것만 해도 73.6퍼센트로 매우 높았다.(윤보람 기자, 「3년간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 60% 미성년자 … 위험신호 놓쳐」, <연합뉴스>, 2024.8.30)
그러자 교육부와 교육청은 학교에 공문을 보내 학생들에게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을 하라고 지시했다. 그 와중에 일부 황당한 학교 대처들이 공개되면서 공분을 샀다.
어느 학교는 ‘딥페이크 관련 텔레그램 사용 유무 설문조사’라는 제목의 조사표에 이름, 전화번호, 사용 유무를 기재하도록 했다. 또 다른 학교는 ‘여학생들만 학교 강당에 따로 불러’ 조심하라고 교육하면서 그 시간에 남학생들은 축구를 했다고 한다. 글쓴이는 “대체 여자들이 뭘 조심해야 하는 거냐. 밤늦게 다니지 마라, 짧은 거 입지 마라, 술 많이 마시지 마라, 클럽 가지 마라, 한여름에도 속바지 꼭꼭 챙겨 입어라 등등. 조심하고 조심해도 가만히 있는 사람 찾아서 사진으로 딥페이크 만드는데 대체 어떻게 더 조심해야 하는 거냐”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서지영 기자, 「“우리 반에선 없는 거 맞지?” … 딥페이크 성범죄에 황당한 학교 대처」, <아시아경제>, 2024.8.30)
성 평등하고 인권 친화적인 사회 조성
학부모 대상 강의를 할 때 “자녀에게 성교육보다 성평등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드는 사례들이 있다. “일명 패드립이라고 지칭하는 용어들은 엄마이지 아빠가 아니다”, “OO놈이라고 하는 것은 욕이 아니고 남학생, 군인들 사이에서도 OO년이라고 해야 욕이다.” 이런 예를 들면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왜 이렇게까지 된 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현상은 스마트폰 과의존 문제도, 누리소통망(SNS)의 문제도 아니다.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위치로 놓지 않는, 성차별 문화가 핵심이다.
‘청소년 성문화센터 아하’는 카드뉴스에서 이번 사건은 일부 청년, 청소년의 일탈이 아니라고 하면서 “성적 대상화, 여성 혐오, 그리고 이를 용인하는 왜곡된 성문화가 낳은 결과”라고 강조했다. 또한, 개인의 윤리적 결핍이 아닌 사회 문제라고 지적했다.
‘여성을 동료 시민으로 여기라’는 구호가 더 이상 구호로만 남지 않도록 정부와 우리 사회가 앞장서야 한다. 성 평등하고 인권 친화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해 학생 처벌’, ‘인공지능과 딥페이크 기술에 대한 청소년의 접근 제한’보다 중요하고,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피해자도 지원할 근본적인 대책이다. (회장 이윤경) 출처 : 카톨릭 뉴스 지금여기( https://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976) <저작권자 ⓒ 참교육 학부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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