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 학부모신문

공교육을 집어 삼키는 AI 디지털 교과서

참교육 학부모신문 | 기사입력 2024/07/05 [09:31]

공교육을 집어 삼키는 AI 디지털 교과서

참교육 학부모신문 | 입력 : 2024/07/05 [09:31]

공교육을 집어 삼키는

AI 디지털 교과서 

 

 

여는 말

 

교육부가 발표한 ‘AI 디지털 교과서 추진 방안(안)’은 마치 사교육 업체들의 스마트 학습(인강) 홍보물 같다. 초등 인강, 중등 인강으로 검색하면 유명 연예인이 등장하는 TV 광고와 홍보 글, 언론 기사 속에서 귀에 익은 브랜드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각 브랜드의 장단점을 비교해 놓은 정보들도 많지만 이 지면에서는 다루지 않겠다. 

 

수많은 스마트 학습 브랜드의 광고 문구에는 공통적으로 ‘개인별 맞춤형 수업’, ‘자기주도 학습’이 빠지지 않는다. 교육부가 내건 AI 디지털 교과서의 비전인 ‘모두를 위한 맞춤 교육’과 ‘교육을 위한 새로고침, 나답게 배운다’는 슬로건은 마치 사교육 업체의 광고 문구처럼 보인다.

 

또한, AI 디지털 교과서 개발 3원칙인 ‘인간 존엄성을 위한 교육’, ‘평등한 학습 기회 보장’, ‘교사의 전문성 존중’은 개발 3원칙이 아니라 ‘한계 3분야’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마케팅 전략인가.

 



사교육 업체 스마트학습(인강)의 실태

 

디지털 원주민인 요즘 학생들은 스마트 학습 세대다. 빨간 색연필로 채점하던 방문 학습지 교사는 이제는 대부분 패드 안에서 채팅으로 관리를 한다.

 

B업체를 예로 들면, 초등은 관리 교사가 학생 5~10명에게 온라인으로 화상 수업을 해주고, 중고등은 과목별, 강사별로 올려져 있는 인강을 수강한다. 관리 교사는 회원인 학생들에게 적합한 인강을 찾아주고, 빠지지 않고 듣도록 점검하고 독려한다. 학생을 월 200명 관리할 경우 하루에 40명, 학생 1인당 5분 정도씩 관리한다. 

 

스마트 학습 업체들 대부분은 초중고 급별에 따라 브랜드가 다르다. 고등학교는 학원 강의를 그대로 연계한 곳도 있다. 또, 업체들은 강의만 듣는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학습하고 자신이 얼마나 아는지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 수 있는 메타 인지 기반 스마트 학습을 강조한다. K사의 경우 ‘학생이 교재에 문제를 풀면 지면에 쓴 필적을 인식해 디바이스에 모든 학습 과정이 데이터로 옮겨진다. 이를 통해 학생이 어느 부분에서 실수하는지, 대충 풀고 넘어간 곳은 없는지 등 사고의 흐름을 파악하고 취약 유형을 점검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인강을 들으려면 전용 태블릿PC(패드)를 구입해야 되는데 기기 가격이 보통 60만원을 넘는다. 패드는 2년 약정 식으로 약정 기간에 따라 월 부담 금액이 달라지는데 중간에 그만둘 경우 패드를 반납하는 것이 아니라 남은 비용을 ‘해지 환수금’으로 납부하고 강제로 구입해야 한다. 월 회비는 기기값과 관리 비용을 합친 금액을 납부하는데 기기값을 약정 기간으로 나누어 분할로 부담하며 그 비용은 회원마다 천차만별이다. 홈쇼핑 등 구매처에 따라 다르고, 프로모션 기간에 구입했거나 재구매 할인 등에 따라 가격이 다르기 때문이다(예를 들면 온OO을 이용하는 A학생의 월 회비가 10만 9천원). A업체 인강을 듣다가 B업체 인강으로 바꾸게 되면 B업체의 패드를 구입해야 한다. 수학은 A업체, 영어는 B업체 식으로 듣는 경우엔 여러 개의 패드를 구입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패드만 5~6개를 소장하고 있는 가정도 있다.

한편, 패드를 구입하지 않고 개인이 보유한 기기에 학습 앱만 설치하면 되는 곳도 있다.

 

중학교 인강을 관리하는 어느 교사에게 학생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물어보니 학교 교과서 출판사에 맞는 인강 안내, 그 학생에게 맞는 인강 강사 추천, 진도 체크와 시스템 이용 시 불편한 점, 수업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만한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정도라고 하면서 자신이 교사가 아닌 콜센터 상담원처럼 여겨진다고 말했다. 예전에 과외와 방과후 강사를 했던 시절에는 ‘가르친다’는 보람이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보람을 느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굳이 학교에 다닐 필요가 있을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교육부가 발표한 AI 디지털 교과서 정책은 사교육 업체에서 수십 년 전부터 해오던 시스템과 다를 게 없다. 1986년 K수학 학습지 업체가 창립한 때부터 진단 테스트, 개인별 진도 그래프, 맞춤형 학습 등이 시작되었고 각 과정을 마칠 때마다 테스트를 거쳐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은 이전 단계를 다시 복습했다.

 

디지털 세대와 코로나19 시기가 맞물려 급속도로 성장한 스마트 학습은 현재 초중고뿐만 아니라 유아에게까지 확산돼 있다. 학원을 안 다니는 학생이 드문 것처럼 인강을 안 들어 본 학생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AI 디지털 교과서의 주요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AI에 의한 학습 진단과 분석, 둘째, 개인별 학습 수준과 속도를 반영한 맞춤형 학습, 셋째, 학생의 관점에서 설계된 학습 코스웨어. 

 

주변의 학부모들에게 이런 내용을 설명하면 모두가 똑같이 얘기한다. 가정에서 홈스쿨링으로도 가능한 학습을 왜 굳이 학교 교실에 앉아서 받아야 하냐고. 

 

AI 디지털 교과서가 학습 진단 및 분석, 학생별 최적의 학습경로 및 콘텐츠 추천, 맞춤형 학습 지원을 해준다면 코로나19 때처럼 가정학습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학업 중단 학생은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할 게 불 보듯 뻔하다.

 

 

AI 디지털 교과서 시대에 교사의 역할은?

 

AI 디지털 교과서로 교사는 어떤 수업을 하고 무슨 역할을 할까?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AI 디지털 교과서는 학생에게 세 가지 서비스를 한다고 한다. 수업설계와 맞춤 처방 지원(AI 보조교사), 콘텐츠 재구성·추가, 학생 학습이력 등 데이터 기반 학습 관리가 그것이다. 사교육 업체의 관리 교사가 하는 일과 별 차이가 없어 보여 이러다간 AI가 교사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는 건 아닐지 우려된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교육부가 학생들의 학력을 진단하는 6종의 학력 진단 평가지를 제시하며 그중에 학교가 선택해 진단하라는 정책을 발표했었다. 교사 단체와 학부모 단체들은 학습지 형식의 평가지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반대했다. 이미 학교에서는 과정 중심으로 학생을 진단하고 있고, 학습이 느린 이유는 단순히 계산력이나 암기력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 환경, 난독, 난산, 다문화 등 여러 요인에 의한 것이므로 다각적이고 전문적인 진단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서울시교육청이 앞장서서 학력 진단 평가를 시행하려 했고 이를 논의하는 TF팀 회의를 몇 차례 가졌는데 한 교원단체에서 대표성을 갖고 참석한 교사의 말에 충격을 받았었다. “현장에 있는 선생님들은 이런 평가지로 진단하는 게 훨씬 편해서 좋아한다”고.

 

디지털 교육 사업은 역대 정부에서 계속 진행해 왔던 사업이다. 이전 정부에서도 교육부는 포럼에서 1,000곳이 넘는 에듀테크 업체와 함께 디지털 교육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2022년 12월에는 교육부가 ‘디지털 교수-학습 통합 플랫폼’을 주제로 학부모 단체 대표들과 온라인 간담회를 가졌다. 

 

대기업인 통신업체가 발제하고, 한 사교육 업체가 회의를 주관했는데 발표 내용의 골자는 사교육 프로그램을 학교로 들여와서 교사가 학생별로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을 선택해 에듀파인으로 결제한다는 것이었다. 학부모 단체들은 한 목소리로 “그런 시스템이면 학교를 왜 가냐? 교사는 그럼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반대했었다. 이렇게 교사의 위상과 역할을 뒤흔드는 심각한 사안에 왜 교사들이 아무 대응을 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었다. 그 때의 작은 틈새가 지금은 댐을 무너뜨리는 거대한 균열이 된 것 같아 참담하다. 

 

 

AI가 진단하고 보완해 준다는 착각

 

사교육 업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AI는 바보라고. 학생들의 수준을 진단할 수 있는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아 엉뚱한 결과를 내놓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메타 인지 시스템이 학습 패턴, 문제 풀이 패턴을 분석한다고 해서 그 학생이 ‘찍어서’ 맞춘 것인지, ‘풀어서’ 맞춘 것인지까지는 알 수가 없다. 3×4=12라는 답을 즉시 쓴 건지, 3단을 처음부터 읊어서 쓴 건지 알 수 있을까. 서술형 나눗셈 문제를 틀린 이유가 곱셈이 부족해서인지 뺄셈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문해력이 떨어져서인지 AI가 어떻게 알까.

 

AI가 부족한 학습 역량을 보완해 준다는 부분도 의심스럽다. 단순히 복습을 시키는 것만으로는 이해도를 높일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어 인강을 수강하는 어느 중학생이 발음기호를 보고 읽지 못하는 수준인데도 AI는 계속 따라 읽으라고만 했다는 웃지 못할 사례가 있다.

 

 

세금으로 사교육 업체 살리기

 

가장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은 우리의 세금으로 사교육 업체를 먹여 살리려 한다는 것이다. 스마트 학습 업체들은 업계 1위로 소문난 곳마저 수익이 아닌 적자를 보고 있다는 소문이다. 메타 인지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들어간 개발비가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타 브랜드 회원의 중도 해지 위약금인 해지 환수금까지 대신 내주면서 서로 끌어가려는 회원 유치 경쟁도 치열하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나서서 시스템과 교재를 사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갖다 붙인다. 경쟁 교육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사교육은 절대 줄어들 수 없다. 학교에서 모두가 똑같이 인강을 들으면 그것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사교육이 또 생길 것이다. 학원이 보편화 되니 1:1 과외를 찾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 누구나 스마트 학습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으니 격차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주장한다.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강남 인강을 듣게 해준 오세훈 서울시장의 ‘서울런’ 정책과 똑같은 논리다. 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강이 아니라 대면을 통한 원인 분석과 다각적인 인적, 물적 지원이다.

 

교육부는 지금 상식 밖의 이유를 내세우며 마치 학생과 학부모를 위하는 것처럼 말하면서 실상은 나랏돈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맺는말

 

공교육이 위험하다. 교육부가 거대한 기업이 되어 공교육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는 사회성을 배우러 다닌다는 얘기가 나온 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사회성마저도 학교폭력, 교권침해 등 사법기관이 되어 버린 학교에서, 친구를 적대시해야 하는 경쟁교육 시스템에서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공교육 기관에 다닌다는 이유로 생기부에 낙인 찍혀 대학 입시에 불이익을 받느니 차라리 검정고시를 보는 게 낫겠다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 여기에 AI 디지털 교육이라니. 이는 지금까지 경험했던 어떤 사안보다도 가장 강력한 공교육 붕괴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이대로 속수무책,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교사의 역할, 학교의 역할이 흔들리지 않도록 집단 지성을 발휘해야 할 때다. 학생과 눈을 맞추고, 손을 잡아주고, 성장하도록 이끌어 주는 교사의 자리를 AI가 대신할 수는 없다. 

이윤경 (회장)

 

※ 6월 22일 ‘행동하는 교육광장’에서 주최한 「디지털 AI 교과서, 과연 혁신인가?」 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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