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 학부모신문

어린이·청소년 인권> 아프면 아픈 대로 사는 삶을 위해

참교육 학부모신문 | 기사입력 2024/11/05 [09:09]

어린이·청소년 인권> 아프면 아픈 대로 사는 삶을 위해

참교육 학부모신문 | 입력 : 2024/11/05 [09:09]

아프면 아픈 대로 사는 삶을 위해

 

‘잘 아플 권리’라는 개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지난 8월 10일,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에서는 ‘다른 몸들’의 조한진희 활동가를 초대하여 ‘잘 아플 권리’를 주제로 특강을 진행했다. 잘 아플 권리 혹은 ‘질병권’은 건강과 불건강 사이에 놓인 몸에 대한 정상성, 편견, 차별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글에서는 한 청소년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잘 아플 권리를 설명하고자 한다.

 


“나는 학교생활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몇 가지 질병은 공식적으로 진단받았지만, 원인 불명의 증상을 호소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병약한 사람’으로 여기며 안타깝게 바라보았고, 부모는 아픈 나를 골칫덩어리로 여겼다. 나는 점차 내 몸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 갔으며, 학교 또한 그만두게 되었다. 약을 먹는 것이 부끄러워 집에서도 몰래 약을 먹곤 했다. 어느 날, 의사가 내게 ‘이건 완치가 어렵다’고 말했을 때, 나는 갑자기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꼭 내가 나아서 건강해져야만 하는 걸까? 그냥 이렇게 아픈 채로 살아가면 안 되는 걸까?’”


 

질병은 치료하고 극복해야 할 상태일까? 아픈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나’는 왜 아프다는 사실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을까? 질병권 담론은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건강 중심 사회’라고 주장한다. 

 

이 사회는 건강을 ‘정상’으로 여기고, 아픈 몸에 비정상, 불행, 차별, 편견이라는 낙인을 부여하며 건강하지 않고서는 행복할 수 없도록 사회 구조를 형성한다. 건강한 몸에 맞춰진 사회는 질병과 건강에 내재된 사회적 불평등을 감추어 버린다.

 

그렇다면 청소년과 잘 아플 권리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아픈 청소년이 수업을 듣고 싶어 해도, ‘건강한 몸’에 맞춰진 교육 시스템은 아픈 몸을 소외시킨다. 다른 한편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아픈 청소년에게 ‘수업 듣기 싫어서 꾀병을 부린다’며 강제로 수업을 듣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위의 이야기에서 보았듯 학교생활과 교육 자체가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 문제도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요즘 청소년이 병에 걸리는 이유가 그들의 잘못된 습관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청소년을 비난하기도 한다. 노력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 신화가 소수자들을 노력 부족으로 몰아가고 차별을 조장하듯이, 질병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는 아픈 몸을 자기 관리에 실패한 몸으로 여기거나 불행하고 불쌍한 삶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프레임 속에서 청소년은 ‘어린 사람’이기에 더욱 자유롭지 못하다.

 

이야기 속 청소년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는 무엇일까? 건강하지 않은 청소년도 학습권을 보장받는 사회, 청소년이 필요할 때 원하는 대로 학습을 중단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사회, 질병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지 않고 아프면 아픈 대로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어린이와 청소년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아파도 미안하지 않고 잘 아플 수 있도록 ‘잘 아플 권리’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름(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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