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경쟁 지옥’ 사회를 보여준 흑백 요리사
‘흑백 요리사’는 요리와 요리사는 물론 심사과정과 심사위원들의 표현까지 유행시켰다. 심사위원은 백종원 씨와 안성재 씨가 맡았다. 그들의 심사평인 “이 요리는 마지막에 느껴지는 킥이 정말 인상적이네요.”, “고기가 이븐하게 익지 않았어요. 탈락입니다.”와 같은 표현은 여러 곳에서 패러디되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주요 심사에서 눈을 가리고 음식의 맛을 평가했다. 눈을 가려 평가 대상자의 신분과 지위, 권위와 유명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요리 솜씨로, 음식의 맛으로 평가를 하겠다는 것이다.
부모가 누구인가에 의해 자신의 신분과 지위가 결정되는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서 평가 대상이 백수저이든 흑수저이든 고려하지 않겠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의 박수를 받았다. 때로 백종원 씨와 안성재 씨는 98명의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섞여 그들과 똑같은 1/100이 되기도 했다.
공정함에 목말랐던 많은 이들의 갈증이 얼마나 심했는지는 이 프로그램이 흥행과 유행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흑백 요리사의 ‘킥’은 공정함이었던 것이다. ‘킥(kick)’은 주로 음식의 맛이 강하고 인상적일 때 쓰는 표현이다. 예상치 못한 맛이나 향, 또는 특별한 맛의 조화를 경험할 때도 사용한다.
20대 80의 사회에서 80의 반란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흑수저들은 백수저를 이기겠다는 강한 의지를 자주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노력과 실력으로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요리사가 된 백수저들에게 존경의 뜻을 표한다.
‘흑백 요리사’는 대한민국 최고의 요리사인 백수저와 대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흑수저들의 마음과 그들을 꺾고 자신도 그 자리에 오르고 싶다는 흑수저들의 욕망을 버무려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었다. ‘흑백 요리사’는 심사의 공정함과 요리를 사랑하는 유명 요리사들이 만들어낸 감동까지 버무려 많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더군다나 파이널 미션 ‘이름을 건 요리’에서 승리를 차지한 것은 흑수저였다. ‘흑백요리사’는 공정한 심사를 전면에 내세우며 한없이 높기만 한 계급 사회에 사다리를 하나 놓았다. 우승자는 장원급제라도 한 것처럼 참가자들이 일렬로 도열하여 박수를 치는 사이를 지나, 마치 왕의 자리에 오른 것과 같은 높은 단에 홀로 오른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실력과 능력을 갖춘 요리사가 탄생한 순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흑백 요리사’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거대한 세트와 화려한 조명, 수십 대의 카메라가 담아낸 세련된 화면 속에 잔혹한 경쟁의 논리와 능력주의 사회에 대한 찬양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과연 공정한 과정이 결과의 적합성을 보장할 수 있기는 할까? ‘맛’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각에 공정한 심사는 가능하기라도 한 것일까? 다양한 사람들을 획일적인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을 반대하는 나에게, 선발을 위한 교육으로 시험 보는 기계를 뽑아내는 학교를 반대하는 나에게, 시험을 잘 본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독점하는 것이 능력에 따른 정당한 보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나에게 ‘흑백 요리사’는 마뜩하지 않다.
세미파이널 2차 미션은 남은 일곱 명의 요리사를 한 명씩 탈락시키는 ‘무한 요리 지옥’이었다. 마치 ‘오징어 게임’에서 상금 456억 원의 현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요리 재료인 두부가 가득 내려온다.
어쩌면 누군가를 떨어뜨려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무한 경쟁 지옥’은 공정한 평가라는 환상과 더 맛있는 요리를 구분할 수 있다는 억지가 만들어낸 썩은 비빔밥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흑백 요리사’는 ‘킥’으로 담아낸 공정성으로는 지울 수 없는 썩은 재료로 만든 음식일 뿐이었다. 맛있는 음식은 결국 미슐랭 3스타의 입이 아니라, 내 입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다양한 맛의 세계에 점수를 매겨, 능력주의 사회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한 ‘흑백 요리사’의 뒷맛이 씁쓸하다. 송민수(거제지회) <저작권자 ⓒ 참교육 학부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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